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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한국실험예술제 온라인 웹진 - 곤충의 더듬이나 동물의 촉수를 닮아 있는 안테나는 보통 송수신의 매개 역할을 하는 기구로 생각됩니다. 안테나에서 탄생한 "안테나다"는 "안테나~다!"라는 친근한 외침이자 '안 태나게' 움직이는 전달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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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26. 15:48 2010KEAF REVIEW


맴돌며 엄습하는 사운드와 신체 조각과의 대위법적 과정

VIVARIUM by Non Grata


 빽빽이 의자를 놓고, 관객들이 정면을 향해 앉자 그 앞에 거울을 쭉 갖다 붙인다. 거울을 하나 놓을 때마다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 거울에 출현하며 끊긴 사람의 얼굴이 이어지고, 관객 모두가 하나의 세계에 예속되며 그 안에서 연결된다. 자기에로 소환시키되 그 자신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투명한 거울은 보통 우리 자신을 지켜보되 세계를 보여주지 않는 불투명한 세계에 대한 창구로 기능한다.

 섹스의 사운드가 처음부터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길이로 지속되는 가운데 섹스의 하중은 거울을 보는 우리 자신을 향한다. 거울 안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을 감지하기 위해 자신에의 경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게 된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되 우리 자신에게로 완전히 집중하거나 침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내면으로 전이되는 사운드가 주는 자극에서 벗어날 수도 없지만, 섹스의 상황을 겪는 데 대한 자신의 반응을 시선의 마주침을 통해 완전히 전유할 수 없는 불편함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은 시선으로 연결되지만 타인의 시선과 자기에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불편한 자신을 인지하고 있거나 웃음으로 상황을 감내하기도 한다. 자아를 마주하고 상정하며 주체를 획정 짓는 거울에 점착하여 자신에게서 완전히 시선을 거두며 자신을 대상으로 버려둘 수 없다. 거울은 틈입 불가능하며 이 상황은 해체 불가능하며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거울은 얼굴 없는, 목소리만 존재하는 극장의 관객을 정면으로 출현시켜 시각적 매체로 삼고, 그 목소리를 지운다.

 씨어터제로 극장의 레일이 돌아가며 돼지 가면을 쓰고, 성기께 단 오브제로 그 성기를 확장해 놓은 기괴한 괴물 신체는 레일의 줄에 연결되어 돌아가며 수박을 가져와 수박에 자위행위를 한다. 깃털이 달려 제멋대로 움직이며 소리 나는 장난감, 끊임없이 반복되는 한 문장을 담는 확성기, 불붙인 오징어 등이 돌아가며 독자적으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는 몇 개의 조합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반복과 중독은 일종의 실재계에 도달하는 길로 여겨진다. 의식의 무화에서 불현 듯 뇌리를 스쳐 간다. 거울에 적는 Al의 ‘erection’(발기) 등의 단어, 곧 동물적 감각은 인간의 잠재된 욕구로 치환되며 동물과의 공통점을 상기시킨다. 물론 인간은 욕구를 욕망으로 치환시키는 데 반해 욕구 그 자체는 변형 이전에 명확하게 신체에서부터 출현한다. 일종의 렉쳐 퍼포먼스로서, 목소리와 사운드는 계속적으로 맴돌이를 하며 여기에 풀무질을 한다. 어두워지며 소리는 남고, 돌아가는 것들의 자취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거울을 거꾸로 돌리며 애초에 상정된 상징적 매트릭스는 다시 세계로의 시선을 불안정하게 흐트러뜨리며 마무리되고 있었다.

Human + Life by 류환


 메트로놈을 작동시켜 놓고, 현대인으로서 류환은 신문을 보며 가벼이 현실로 돌아간다. 퍼포먼스 현장이 아니라 현실로 들어가는 기호로서 메트로놈은 현대 사회의 속도와 급박한 리듬을 상정한다. 신문을 찢고, 담배를 피우고 담배 연기를 내뱉지 않고 들이마시고, 숨을 억제하고 고통을 겪으면서 풍선을 분다. 풍선 불어놓은 것들을 위로 띄우고 담배로 터뜨린다.
 메트로놈은 그 구속됨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그것은 이미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이미지와 병치되는 순간에는 거꾸로 채워지며 틈입하기도 한다. 행동의 층위적 전환이 있을 때마다 작가는 메트로놈을 끄고 다시 켜서 더 빠르게 작동하도록 한다. 메트로놈은 빠르게 작동하며 일정한 리듬 단위를 구체화며 그 구조를 인지케 한다. 붉은색 조명에 작가는 웃통을 까서 자신의 상반신에 수십 차례 침을 놓고 위에 부항을 뜨며 얼굴 역시 빨간 물감으로 칠한다.

 반복되는 부항의 지루한 시간은 의식을 비우게 하고,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여덟 개 이상을 뜨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관객은 몸으로 직접 체현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신체의 확장으로서 피부는 압력을 바깥으로 분출하기 전 순간에 머물러 있다. 부항을 떼자 피가 솟구치는 대신 몇 방울이 점점이 배어 나온다. 얼굴에 빨갛게 바르며 부항을 떼어 낸다.


 'human Life Natural Civilization'을 차례로 쓰며 환경오염의 위험을 경고한다. 시각적 기호를 충족시키는 장치로서 몸을 오브제화 또 영토화하며 출발한 작가의 행위는 일종의 상징화 전략으로 명확화되지만, 그것은 본래적 의미에서 잃어버린 실재로서 의미, 따라서 기호가 아닌 것이다. 붉은색은 피라고 하는 것으로 제시되지만, 이는 피로 얼룩진 땅이라는 실재와 붉은색이라는 전위적이고 혁명적인 기호의 이념 사이에서 획정되지 않고 몸부림의 유희로써 사라지는데, 사실상 환경오염의 폐해를 이미지적으로 전용하여 그 바깥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는 인류를 상정한다. 그 안의 세계는 파열을 필요로 하고, ‘mis for time of erotn’이라 쓰고, 풍선을 크게 불며 ‘civilization’을 쓰고 터뜨린다.

AMERICAN WOMAN #12 BY Erik Hokanson & JILL MCDERMID


 Hokanson과 MCDERMID은 옷을 후다닥 벗고 누드 상태에서 여성 옷을 입고 가발을 쓴다. 반짝이는 남자(Hokanson)의 검은 옷은 에나멜 같은 페티시즘적 욕망과 연결되며 여성(MCDERMID)의 붉은색 원피스는 연약함의 기호를 부가한다. 검은색 테이프를 팔에 붙이고, 공연 전 미리 설치해 놓은 경계로서 끈이 둘러쳐진 무대 가에 붙어 앉은 관객들을 두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Hokanson은 정신없이 환경을 구축해 가는데, ‘caution’이라 써진 테이프를 관객의 목 뒤에 두르거나 해서 무대를 덮어 팽팽하게 집단을 엮는다.

 이 긴박한 리듬에 동조할 수는 없어도 따라가게는 되어 있다. Hokanson은 가슴의 하트를 도려낸 나머지 종이를 붙이고, 사람들 몇 명을 끌어와서 경계를 둠으로써 집단적 포박 형태를 취한다. MCDERMID는 자신의 심장을 만지며 심장이 있느냐 물어보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며 전단지를 가지고 심장을 만들어 자신의 가슴께 넣는다.

 호루라기는 중독적인 파열음으로 마찰을 통한 고통을 부여한다. 스스로 경계로서 의미를 띠고 발화하며 숨 언어를 치환하는 호루라기 부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탄가스를 연결한 토치는 연소되며 사운드를 생성한다. 호루라기 소리와의 병치는 일종의 대위법을 형성한다.   철조망으로 둘러싼 미국 국기는 엄연한 장벽 안에 존재한다. 심장은 별과 알레고리 관계를 형성하는가!


 심장을 도려내고 보여주고 자신 가슴 속에 넣고 그 심장은 나에게로 일종의 접수 됐다는 MCDERMID의 표식에 비워진 심장이 있었음을 알리는 종이를 붙인 사람들은 관계망을 형성한다. MCDERMID는 자신의 분홍색 가발의 머리를 잘라서 앞서 팔에 붙여놓은 검정 테이프를 떼서 옷을 뒤로 걷고 엉덩이 위쪽께 머리털을 붙이고 한 명씩 바라보면서 ‘기호(신체) 나눔’을 수행한다. 가슴들을 둘러놓고 가슴의 형체들은 하나씩 떼서 태운다.

 가슴 속에서 MCDERMID는 죽음의 수면을 맞는다. ‘너의 심장 곁에 나 잠들다’, 타자에게로 가는 체화의 몸짓은 불가능성을 안고 교묘한 트릭에 그치는가, 아님 가상의 유희적 수행일까, 옷을 다시 벗고 검은색 물감을 서로 몸에 페인팅해 준다. 몸을 뒤섞는 접촉 행위가 관계를 물결치는 신체로, 무한한 영토로 변용하며 관계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이어 북한 국기와 태극기를 성조기 위에 놓고 불태운다. 불을 태우는 행위는 혁명의 들끓는 피의 에너지가 아니라 관계와 의식을 완전히 뒤섞는 연금술적인 의미에서 차용된 바가 커 보인다. 관계의 누층에 접속하는 데 불가능한 문화적인 경험과 전유의 시간을 획득할 수 없는 만큼 의식의 무화적인 경계 허물기와 트랜스한 순간의 점프가 필요했다고 판단했던 것이 아닐까.

Wir haben zeit.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by Rubens


 바다에 들어가 하반신을 담그고 퍼포머가 호른을 부는 영상으로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호른의 한 음계를 부는 데서 시작된 연주는 이어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를 부는 행위로 계속 반복된다. 바다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한 퍼포먼스는 행위를 도시에서 해방시키고, 자연으로 에너지를 확장하며 의식을 확장시킨다.

 여기에 소주병을 많이 들고 나오는데,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시체로서 놓인 큰 몸피를 지닌 퍼포머가 시체로서 잠들고, 소주병들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행위로 소주잔을 깨서 신체 위에 덮는다. 신문 같은 것들로 함께 덮여 있는 신체는 숨을 쉬며 꿈틀거리고 깨진 유리들이 떨어져 내린다. 입으로 소리 내는데, 어린아이의 괴성 같이 들린다. 어린 시절의 마징가제트류의 만화영화 주제곡 같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마치 유리잔으로 샤워하는 퍼포머는 실재계를 거치는 감각의 마찰을 야기하는데, 아픔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그 속에 있으면서 소주병들을 잡고 분다. 그것들이 찌르거나 하는 게 아니라 피부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기에 마찰과 접촉에 가깝고, 피를 많이 야기하지는 않는다. 관객석을 뚫고 화장실로 향하는, 이상한 신음과 병 몇 개를 동시에 입에 대고 부는 행위를 하며 지나치는 그녀의 신체에 구정물이 묻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퍼포먼스 행위는 영상의 행위와 등가 되어 그것이 의식적으로 전이된다. 계속된 연주는 누군가를 그립게 만든다. 살갗에 닿는 음성과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이 의식을 파고든다. 고향과 추억, 그리움은 마치 신체에 묻어있던 흔적과 같은 것으로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신체를 채 가늠하기 전의 어린 시절, 떼를 쓰지만 그것이 전해지지 않는 순간, 유희적으로 내뱉는 소리에 자신의 의식을 맡겨버리던 기억 속에 묻어 있던 순간들이 그녀 몸을 타고 흐른다. 그 자각하지 못하거나 초자아적 타자의 개입 없이 유예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심층의 자아로 접속하는 여지들을 심어 주었다.

Photo by J & Yokko
글 김민관 mikwa@naver.com

 

posted by 아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