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피노키오」, 「Boy & Girl」(에이스매직_이제민), ‘동화 같은 극적인 이야기에 녹아들은 마술’
가마 놓고 도령으로 분장한 마술사 이제민은 조선시대 정도의 역사적 배경을 안기는 극을 상정하며 전반적으로 마술을 극적인 내러티브를 갖춘 공연 양식에 접목한다. 천에서 꽃봉오리가 되는 간단한 마술로 보통의 장미꽃 마술을 치환함으로 시작해 전반적으로 ‘춘향전’의 스토리를 차용하여 무대를 만든다.
신부와의 동화 같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이후 사또가 각시탈을 씌우고, 상자에 신부를 가두고 칼을 쑤셔 넣자 손을 들어 항복한다. 상자를 벗겨내자 사람이 바뀌어 있고 포졸이 가면을 벗자 여자가 나타난다.
마술봉을 들고 걸으면 사운드 효과를 줘서 발을 맞추는데, 마술봉을 흔들 때마다 마술사는 경쾌한 소리를 자연 받는 데 반해 관객석에서 자원해 나온 한 아이가 흔들 때는 소리가 다르게 들려 웃음을 준다. 특정한 자세를 잡자 비로소 같은 소리가 나는, 특정한 눈속임이 아닌 매체와의 조응으로 마술을 만든다.
이는 공연에서의 리얼리티를 관객으로 전이시키는 것으로, 소리 나는 것은 단지 맞추는 것이지만, 곧 음향 감독 등이 조정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무대에서는 리얼리티를 상정하기에 그것을 교묘하게 실재와 무대라는 것에 대한 인지 사이에서, 내지는 감각과 사유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춤을 립싱크하며 추고, 여자를 기타 앞에 위치시키고 안아 올려 허공에서 옆으로 누인 상태를 만든다.
「귀향」(강정균), ‘노스탤지어’로부터 출발한 본래적 삶의 회복
고명숙의 반복된 노래는 고향의 구성지고도 구수한 느낌을 선사한다. 강정균의 마임은 그 노래에 맞춰 어머니가 올 때의 아련한 향수 같은 노스탤지어를 체현하고 자극한다. 마임의 표현력을 고스란히 살려 춤으로 녹여내 아기로 돌아가고, 손을 빠는 과거 몸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구체적인 행동의 배경은 실재로서 상정되기에 구체성과 함께 행동은 매우 현실성을 띠게 된다. 노래가 계속 반복됨에 따라 푹 침잠되는 분위기를 얻는다.
어린 아이가 홍시 같은 미끄덩하면서도 달고 실한 과실을 베어 먹으며 몸피가 커짐 커지면서 어떤 도달해야 할 현실적 목표를 상정하고 고향에서 자꾸 멀어지고 또 성장하고 그 몸만큼 채워야 할 것들도 많아지지만, 한없이 달리기만 하는 세상에서 멀어진 노스탤지어는 역설적으로 현실을 떠나 다시 죽음의 태아적 기억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육화되며 고향의 안온한 기억도 되살아나 물 같은 휴식의 선물을 안겨주게 된다.
여기에서 몸짓을 통한 표현으로 나타나는 물질/마음의 크기를 물리적으로 가늠하기 어렵거나 그 둘의 차이를 쉽게 양분할 수 없음에도, 어찌됐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 하에 단단한 힘이 내재하고 그것을 의식이 상정하거나 내지는 몸짓의 확장과 수축으로 마음의 크기는 만들어진다.
「"GUT, Gooooooood!"」(이미희), 유려한 몸짓의 시간의 전유
북 위에서 가녀린 동작으로 슬슬 펴 올리며 몸의 주름은 한복의 비단결 같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주름과 같이 순식간에 아릿한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유유한 자취는 어떤 억누르는 정서 속에서도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를 보여주고, 북을 품에 안아 한의 덩어리로 전유하고, 신체의 확장으로서 의식을 부여하며 그것과 노닌다.
북의 끈을 어깨에 걸머쥐고 길을 떠나되 아무도 곁에 없는, 홀로 저만치 가있는 뒷모습으로 아련하게 자취를 남긴다. 붙잡을 수 없음을 알면서 단지 시간의 흔적만을 더듬으며 좇아가지만 저만치 가고 그녀는 없다. 그 흔적이 가볍지만은 않다.
정경화, ‘판소리를 체험하는 시간’
“잘한다!”, “좋지!”, 판소리를 함께 공유하고 전유하는 방식이 있음을 알리고, 그 추임새라는 것을 배워본다. 이로써 관객과의 한 바탕 판을 벌이며 노는 것이다. 노래 한 곡조를 뽑고 여기에 추임새가 더해진다. 판소리에 비트가 깔려 독특한 층위를 만든다.
「춘향가」의 구성진 목소리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깊이를 메아리로 만들어 출렁거리는 진폭으로 접고 펴는 그 자신의 운동을 하며 울려 퍼져간다.
멜로디를 지정하지 않고 발화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양상으로 점층적으로 덮여가며 하강을 기약치 않는 상승의 맥놀이로 끝 역시 지정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어야”를 유도하여 관객의 흥과 장단을 추임새 삼아 「뱃노래」를 불렀다.
김광석, 시간을 누비는 기타의 경지
그의 손은 자유자재 막힘이 없고, 거칠 것도 없다. 시간을 마음대로 쓰고, 그에게서는 곧 시간을 물질로 늘리고 줄이며 그 깊이를 재는 게 가능하다. 기타의 퍼지는 소리는 마치 향처럼 다가온다.
「섬집아기」를 치는데, 어렸을 적 들었을 때는 마냥 즐거웠는데 지금 연주하면 슬퍼진다고 이야기를 붙인다. 「바위고개」를 이어 했고, 기타로 민요를 연주함으로써 육화된 기억을 새롭게 체현케 했다. 「백도라지」 역시 다른 음계로 새롭게 전유해서 연주했다. 그가 오늘 연주한 곡들에는 소위 문화콘텐츠라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인위적으로 지정하는 표면적인 형식이나 전략적 지점에서의 선점이 아닌 우리나라의 문화적 누층이 순수하게 뿜어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이들이 자라는 미래가 되어 있을 때는 경쟁률이 심하지 않을 테니 각자 꿈을 가지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World Improvisation'(Celinne Baque, Moeketsi Koema, 김봉호), 너울대는 에너지의 자장
장구와 노이즈 사운드 무대를 누비고, 약동하는 에너지는 땅을 딛는 데도, 몸을 펼치는 데도 크게 자리한다. 벽에 기대서서 춤을 추되 몸을 털며 문화적 기억이 묻어나오게 하고, 에너지를 진동시켜 나오는 아프리카의 리듬에 한국적인 것들이 묻어난다.
셀린이 돌며 내파하는 에너지를 물질처럼 뭉텅뭉텅 잘라내며 서서 거의 절정의 기량을 쉬이 뽐낸다. 약간의 위태로움도 암약하는 에너지에 닿아 있는 것처럼 셋이 모여 몸을 기대고 하나의 덩어리를 만든다. 에너지의 전이가 이뤄지는 얼굴은 진지하지만 꿈틀거림이 내재한 긴장으로 팽팽하다. 의식이 온 몸으로 뻗쳐 있는 가운데 얼굴은 단지 감각하는 거죽일 뿐이다.
서로 기대 손을 모으고 걷기도 하고, 한 명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도 하며 몸의 지지대가 되어 주기도 한다. 몸을 꺾고 누비는 광활한 영토에 피가 흐른다.
손을 위로 교차하며 그것에 끼어들고 서로 어지럽게 이지러지며 층위를 직조한다. 의식을 나누는 등에 기대 조용히 음악을 육화한다. 사운드가 하강하며 신체 역시 끝없이 침잠한다. 물구나무서서 에너지를 침잠하며 온 몸으로 확장 전이시켜 에너지를 담지한다. 앞을 보며 비로소 끝을 낸다.
즉흥에 의한 즉흥, 즉흥의 절정에서 탄생하는 즉흥의 마력, 모든 것을 분산시키는 기표들의 분출, 끊임없이 바뀌는 현존의 메커니즘, 달구어진 불덩이판, 웃음․땀범벅이 농후해지는 움직임, 문화적 누층으로서 기억, 춤의 실재성, 이 많은 것들이 뒤섞여들어 에너지가 넘실대는 판을 직조해 낸다.
글/사진 김민관 mikw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