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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한국실험예술제 온라인 웹진 - 곤충의 더듬이나 동물의 촉수를 닮아 있는 안테나는 보통 송수신의 매개 역할을 하는 기구로 생각됩니다. 안테나에서 탄생한 "안테나다"는 "안테나~다!"라는 친근한 외침이자 '안 태나게' 움직이는 전달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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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7. 15:18 Anth-e-nada(작품 포커스)

▲ Non Grata(에스토니아)

퍼포먼스는 문 앞에서 극장으로 나가는 통과 절차에서부터 시작해 다시 야외로 나가는 일련의 흐름을 끊김 없이 이어간다. 서로 각기 다른 퍼포먼스는 중단되지 않고 마치 하나의 장을 형성하는 것 같고, 이는 아티스트들의 자발적인 동력에 의한 것이라는 점과 별도의 진행의 매개자를 두지 않고 팔루스의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트는 지점에서 쉽게 획득된다.

극장에서는 이명박 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정치적 의제들을 꺼내 동의를 요구한다. 정치적 내파가 외국 아티스트를 통해서 한국 상황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놀랍고도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지위의 전복과 유희를 통한 그것에의 달성이 오히려 폭력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이성적 판단을 무마시키는 집단적 소요의 상황에서 선택의 갈림길을 만드는 참여를 부추기며 이러한 체험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반추하게 하는 듯한 시선을 읽게 된다.

▲ Non Grata(에스토니아)

아트카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보닛 위에 앉아 가랑이 사이에 긴 붉은 풍선을 놓고 봉고차 뒷문을 열어젖힌 채 그 열린 공간으로 성기의 이전된 오브제로서 풍선을 들이밀었다 꺼냈다 하는 것, 일상에 투여된 반복의 힘이 큰 흐름에서의 박자 단위로 재편되는 것이다.

여기에 닭을 주차장 천장에 세게 던져 떨어뜨리며 소리를 내는 SP38, 사토 유키에의 기타가 멜로디를 형성하지 않는 기타를 치는 행위에서 현에의 마찰이 곧 매질로 공간을 뒤덮는 것, 단순한 반복의 유형을 형성하는 리듬과 다채로운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메가폰으로 같은 어구를 계속 반복하며 관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알 파독의 말이 각각의 사운드들의 층위들과 마찬가지로 대위법을 만들고 또 빈 공간을 파고들며 의식을 무화시킨다.

이 빽빽한 틈은 사운드의 쌓임, 또 몇 개의 사이클이 시작과 주기를 달리하며 끊임없이 반복으로 인해 만나며 불협화음적 하모니가 상정되며 일상을 혼란스럽게 조직하는 큰 에너지의 동력을 보여준다.

▲ Rubens

검은 옷에 한 쪽 가슴을 들어내고 몸 뒤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간 기묘한 형상을 한 조각적 설치의 대상물로서 있는 영상 안 여자와 상반신의 가슴을 드러내 놓고 하얀색의 대비되는 의상을 입은 몸피가 큰 여자가 자신의 살을 바늘로 꿰매며 그녀와 실존적인 관계 맺음을 수행한다.

사람으로 감각되는 영상 속 존재와 만날 수 없는 간극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미디어에 대한 성찰이 들어가 있다. 자연의 숲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평화롭게 나타나는, 스크린이라는 무대는 매우 단조롭고 살을 꿰매는 행위 역시 살가죽이 지방으로 두터운 그녀의 몸에 피는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도 않으며 특별히 부각되는 임팩트‧박자의 요소도 없다.

지난 예술제에서 비명을 지르며 주선율 악기가 베이스로 깔린 채 진행되었던, 그래서 감정을 건드리는 음악이 비명과 함께 아픔과 삶을 감각케 했던, 또 직접적인 대면의 관계를 형성하는 측면은 비워진 채로 남게 되었다. 실제 살과 살을 꿰맨다는 것, 사실 제 살과 스크린의 플렉시블 스크린을 꿰맨다는 것은 놀랍게 들리지만, 실제 보았을 때 별 감흥은 없는 것이다.

▲ The physical poet

움직임 자체만으로 흐름을 잇기보다 일종의 연극적 구성을 취하게 된다.

내레이션이 나오고 시간적 배경과 목소리의 존재, 서술적 흐름을 모두 가져간다. 아들이 죽었고 제의를 통해 다른 영적 매개자가 아들을 살려내고 다시 만나는 순차적인 흐름을 갖고 또한 분절적인 시퀀스들을 음악의 변화를 통해 가져간다. 따라서 죽은 육체의 움직임이 그로테스크하게 드러나기보다 어떤 연결선상에서 움직임이 한정되는 면이 강하다. 음악의 전환은 일종의 의식에 대한 트랜스를 형성한다.

▲ Julie Jaffrennou

생고기들과 누더기 같은 옷을 연결해 신체와 다시 연결한다. 곧 동물의 살은 작가의 피부 내지 신체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매우 무미건조하며 실제 살에 바느질을 가하는 것은 아니어서 마른 신체를 지닌 작가의 몸에 상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고깃덩어리 신체로 분해 온 몸을 또 다른 피부로 덮고, 숨조차 쉬기 힘든 상황에 의식을 담그고 있다. 그 두터운 신체 밑에서 의식은 희미하고도 내면에 귀착되고, 침묵 속에 표현되지 않는다. 덧씌워진 신체는 분명히 또 다른 자신의 신체로 부착되는 것이다.
 

posted by 아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