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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한국실험예술제 온라인 웹진 - 곤충의 더듬이나 동물의 촉수를 닮아 있는 안테나는 보통 송수신의 매개 역할을 하는 기구로 생각됩니다. 안테나에서 탄생한 "안테나다"는 "안테나~다!"라는 친근한 외침이자 '안 태나게' 움직이는 전달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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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31. 13:56 Anth-e-nada(작품 포커스)


 처음 간략한 소개 멘트와 같이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소셜 네트워크 툴이나 온라인 툴들로 서로의 예술을 표현’하고 네트워크하는 시점에서 네이트온이나 스카이프 등을 중계 매체로 활용하여 펼쳐지는 릴레이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배우이자 무용수인 아티스트 전수진은 무표정한 얼굴에 위태하게 서서 천천히 유동하며 움직였다. 유동하는 신체의 언캐니에 이르지는 않지만, 신비스러운 층위에서 의식은 심연에 있되 구불구불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며 외파되는 모습을 보였다.


 즉흥성을 살려 충주 건국대에서 학생 두 명은 앞의 공연을 레코딩해서 다시 영상으로 만들어서 상영하는 미션을 계획하고 있었고, 일단 실시간 퍼포먼스로 ‘깐풍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네’의 비트 강하고 가사가 인상적인 랩과 노래를 펼침을 영상으로 중계하는데, 중간에 화면이 끊기기도 하는 단속적 출현, 모자이크식 색감으로 독특한 영상의 결이 만들어진다.


 John Bonafede의 「For Those Who Were Silenced Before Me」 역시 아프리카 방송으로 송출되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펼쳐졌다. 좁은 감방을 상정하고, 수갑을 채운 죄수를 심문하며 욕조 속에 머리를 담갔다 뺐다 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동시에 죄수에게 난센스 질문을 던져 대답 대신 침묵으로 일관케 만드는 아이러니를 다룬다. 물에 얼굴이 잠기는 죄수 Bonafede에게 가해지는 심문 행위 동안에 또 다른 죄수의 피아노가 제멋대로 난동을 부리고, 결과적으로 Bonafede가 실신하게 되는, 몸을 통해 나타나는 수행적 지점을 극명하고도 극적으로 다루며 정치적인 풍자를 적나라하게 관철시킨다. 
 

 흰색 옷을 입은 성백 작가는 부산에서 자신의 행위를 중계하는데, 의자 하나를 옆에 두고, 흙을 얼굴에 파묻고, 흙을 입에 머금고 흰 의자에 가서 뱉는 행위를 반복한다. 흰 꽃을 들고 와서 흙에 심고, 꽃을 손으로 가리킨다. 물을 머금고 돌아와서 뱉어 식물에게 물을 선사한다. 이는 자연에 기꺼이 기의하는 과정이며 인간 중심의 평화가 아닌 희생의 무른 영토를 시간의 궤적으로 서서히 다듬는 수행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중계하는 화면의 입자는 유동적인 층위 행위를 획정 짓는 데 불안정한 수행 지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연속되지 않음이 불현듯 나타나는 화면의 멈춤 현상에서 의식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재현되지 않는 현재에 대한 실재의 귀환으로서 과거가 출현하고, 과거의 일부분으로서 내지는 현재의 공백으로서 단절된 현재는 실재를 좇고 매개하는 카메라와의 더욱 공고한 관계를 가져가게 된다. 그 부유하는 영상은 마치 그것을 기억의 한 자취에서 현현되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실재가 전하지 못하는 것을 실재를 재매개하는 카메라에 의해 수용하는 신체의 감각이 재편되는 현상이 인다.
 원활하게 잘 작동이 안 되는 편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상대편 쪽에서 이쪽의 관객들을 수반한 무대의 반응이 잘 매개가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정보를 취하고 수합하는 건 임시적인 퍼포먼스 방송국을 차린 이곳에서 가능하고, 정보는 상대적이고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취해지지만, 선택과 확장은 자유롭다.


 ‘탕타당’, 둔탁하게 철판 같은 것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종이를 크게 깔고, 거기에 Amadeo Peñalver는 페인팅 드로잉을 한다. 실제 매우 약동하는 움직임에 거칠게 물감을 흩뿌리며 흔적들이 어지러이 덧입혀지는 것이지만, 이는 단속적 영상의 송출로 인해 중간 중간 변화의 궤적을 입은 다른 이미지들 삽입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신체는 하나의 덩어리와 같이 색색의 물감과 궤를 이뤄 위치한다. 그는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하나의 끈을 등에 연결해서 유동하는 신체로 표면과의 부딪침을 온 몸의 신체에 전달되는 떨림에 의해 붓으로서, 확장된 신체의 궤적을 종이와의 접촉을 통한 신체드로잉으로 치환시키며 점차 고깃덩어리 신체로 변모되어 간다.
 바닥은 완전히 빨갛게 칠해지고, 확장된 신체는 지배할 수 없는 신체로써 붉게 바닥을 만들고, 계속 의식을 때리는 반복되는 음향의 압박 속에 실재와의 마찰은 몸에 기록되는 흔적으로, 바닥은 하나의 신체 표면으로, 신체는 그 속에 융해되는 것이다.


 한 명의 배우는 계속 누워 있다. 엎드려서 손을 위로 뻗치고 심호흡을 하며 의식의 작은 물꼬를 튼다. 사운드가 강하게 증기를 뿜으며 나오는 그 안에 파묻혀 생각들은 회오리치며  회상된다. 의자에 앉고 세 개의 화면이 영상을 덮는다. 세 명의 여성이 웹캠을 통해 얼굴을 비춘다. 빛이 나는 물건들로 화면을 채우거나 얼굴을 칠하고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다른 사물들을 비추고 웹캠에 얼굴을 들이미는 식으로 장난을 친다.
 무대의 여자는 지하철을 타듯 손을 흔들고 일상의 장면들을 연출하고 흙을 파고 덮는 시늉, 머리를 묶어 얼굴을 뒤덮는 마임적 행위로 에피소드들의 분절된 나열 이후 유리 접시들을 가져와서 펼쳐 놓고 물감을 뿌린다.

 미디어에 의한 중계 방식은 공연의 질적 판단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어떤 행동들을 연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자 다른 층위들을 접속하는 미디어의 트랜스한 측면을 자유롭게 구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창, 하나의 층위에서 왔다 갔다 하며 펼쳐지는 시선의 분산은 인지하는 속도에 대한 감각들을 구현하며 실제와 가상을 하나의 창이라는 가상의 층위로 실재를 매개하여 치환시킨다. 여러 레이어를 접속했다 풀었다 다시 접속을 불러오는 접속  의식의 끈은 연결되고 판단하며 구성하는 세계를 상정하고, 클릭이라는 수행은 실재로 영상을 통해 현현시키는 것이다.

글/사진 김민관 mikwa@naver.com

posted by 아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