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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한국실험예술제 온라인 웹진 - 곤충의 더듬이나 동물의 촉수를 닮아 있는 안테나는 보통 송수신의 매개 역할을 하는 기구로 생각됩니다. 안테나에서 탄생한 "안테나다"는 "안테나~다!"라는 친근한 외침이자 '안 태나게' 움직이는 전달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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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2. 10:46 Anth-e-nada(작품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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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vet Pesu(오스트레일리아)는 어우동이 쓰는 모자 비슷한 모자를 쓰고 앞에 설치 조형물을 하나 놓고 그 앞에서 노래를 하는데 발성이 아주 뛰어나 그녀의 거대한 몸의 부피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전통 의상을 걸쳐 입고 펑퍼짐한 치마에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돌리며 자신이 수집하고 끼적거린 이미지들을 한 장씩 넘기며 보여줬다. 매체에 대한 청각적 증폭과 시각적 전이 등 사운드와 시각 사이에서 신체의 병치가 이뤄졌다. 나무로 된 의상을 두드리며 리듬과 사운드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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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2. 10:42 Anth-e-nada(작품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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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o Yukie 상이 기타 연주를 준비하고, 요기가 대표 이한주 씨는 테이블 위에 가스버너 두 개를 갖춰 놓고 마이크를 앞에 두고 냄비를 올려 물을 끓이고 프라이팬에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요리가 내는 사운드 일상을 가져와 재전유하는 사운드 퍼포먼스와 그것과 등가되는 사토 유키에 상의 연주가 협연을 이룬다.

 

음식이 조리되는 냄새가 코끝을 건드렸다. 이한주는 특별한 퍼포먼스를 치른다기보다 요리를 한다는 자의식 자체를 스스로가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Sato는 그 안에 현을 집개로 찢고 기타와 붙어서 때리고 긁고 현의 노이즈가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걸 듣고 있기도 하는 등 기타를 사용해 다양한 노이즈 사운드를 선보였다.

 

요리가 다 되자 이한주 작가는 요리를 먹기도 하고 테이블 위에 오브제들을 모두 밀어 버리고 만들어진 음식으로 한 상을 차려 대접하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Sato는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막걸리를 들어 건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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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2. 10:38 Anth-e-nada(작품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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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에 기운 철사에 풀이 돋은 것 같은 구가 달린 조형물들이 극장 곳곳을 메우고 있다.

 

Uchujin Ochan은 기타 하나 들고 연주하며 방랑하고 인생을 음미하는 보헤미안 같은 면모를 띠었다. 그의 연주는 중독성이 짙고 특정한 기표가 아닌 억센 웅얼거림과 단단한 에너지를 형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참을 지속하다 가사를 읊는데 무슨 독경을 하는 듯하다.

 

Fujieda Mushimaru는 천천히 디디는 등장의 거창한 의식과 함께 서서히 음악의 에너지를 받고 반응하는데 죽어있음의 위치하는 세계에서 새로운 몸을 탄생 시키는 것에 가깝다.

 

왜나막신을 신고 딱딱 소리를 내며 팔다리 뻗치며 누워 움직임을 지속시켰다. 음악이 지속될 때까지 계속 그의 생명은 유지되고 음악이 한 템포 흐르고 그 호흡을 다하고 나면 그의 신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하고 초과된 움직임에 다시 음악은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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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2. 10:33 Anthena-da(현장 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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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2. 10:27 Anth-e-nada(작품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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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 Jaffrennou는 길게 땋은 머리카락을 나무에 걸어 받침대 하나를 놓고 위에 올라서 다른 퍼포먼스들이 모두 끝날 때까지 버티고 있는다. 그러고 나서 퍼포먼스의 귀결은 머리를 자르는 것이다.

 

신체 고문 같은 고행은 작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인데 고통을 감내하는 정화나 제의식적인 측면을 담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작가 설명을 참조한다면 피부와 연결된 피부로서의 머리카락과 그것의 확장된 형태로서의 또 다른 신체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인위적으로 붙인 머리를 잡아당김으로써 온 시간의 체증과 함께 몸에 이는 경련은 이미 붙인 머리가 그녀의 신체 일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치 안경을 쓴 사람에게 안경은 눈의 일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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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2. 10:17 Anth-e-nada(작품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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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 Di Ricco는 자신의 몸에 전화번호부를 감기 시작했는데, 전화번호부는 다름 아닌 사전에 펼쳐져서 테이프로 연결해놓은 것으로, 이동하며 그것들은 조금 더 부피가 커지고 확장된다.

 

주요한 포인트는 그것에 갇혀 주체하지 못한다는 지점에 있다. 정보의 홍수를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은 종이라는 유형의 무형의 정보들을 품은 매체를 완전히 해체하는 대신 풀어헤침으로써 그 표면적들의 합으로 인한 부피의 확장, 즉 전화번호부의 일련의 예술적 전환 과정을 통해, 그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몸을 뒹굴고, 그것들을 헤집음으로써 전화번호부 종이들의 표면은 바닥과 닿는 식으로 진행된다. 즉 놀이터에서 출발한 끊임없는 여정은 정보를 펼쳐놓고 그것들 잇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posted by 아트신
2009. 9. 12. 09:56 카테고리 없음

링크=====================>

posted by 아트신
2009. 9. 11. 13:40 Anth-e-nada(작품 포커스)



에스토니아 작가들은 인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한 렉처 퍼포먼스를 개진했다.

 

뇌, 심장 등 신체를 나눠 설명하고, 야생과 인간의 본능을 상징하는 곰 의상을 뒤집어 쓴 퍼포머가 뇌를 들고 와 그것의 갈라진 틈 사이로 밀가루 반죽 같은 걸 연신 먹어대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먹다 토하는 반복된 광경이 다소 역겹게 느껴졌다.

 

한편에서는 금빛 가루를 몸에 입히며 반응하는 Taje Tross의 모습이 이어졌다. 하나하나 설명되었지만 마이크에서 빚어진 노이즈로 인해 원활하게 언어가 들리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설명되고 있었다.

 

뇌를 먹음으로써 정신을 물질로 치환하는 과정, 금이 갖는 환상과 쾌락, 신체를 찬미하는 일련의 과정이 유물론적인 철학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 아닐까 하는 짐작 정도는 됐지만, 명확한 메시지가 성립되지는 않았다.

 


posted by 아트신
2009. 9. 11. 13:38 Anth-e-nada(작품 포커스)


Yang Qing(중국)은 B급 감성의 전형적인 모습이 내비쳤다. 머리카락들 삐져나온 머리를 싼 보자기를 들고 와 머리카락에 의식을 집중시켰다. 그것을 떨어뜨리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댕강 나가는 감각적 전이를 일으켰다.

 

이어 뒤로 돌아 빨간 색 그의 의상으로 머리를 묶자 들어난 등에는 스티커가 일종의 직인처럼 붙어 있다. 그것을 떼는 데 얼굴이 없이 그것이 행해진다는 것이 전복적 반란을 나타냈다.

 

천연덕스럽게 다소 음악이 크게 뒤 스피커를 타고 흘러 중압감의 긴장시키게 했는데 엄숙한 분위기보다 희망과 우스꽝스러움이 반쯤씩 섞인 데 가까웠다.

 

양발로 뛰며 비닐로 깔린 서너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땅을 디딘다는 것은 제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았다. 정화와 한결 단단해지는 결단의 의미를 상기시켰다.

 


posted by 아트신
2009. 9. 11. 13:36 Anth-e-nada(작품 포커스)

 

Melodie Duchesne(프랑스)은 검은 천으로 칭칭 몸을 동여매고 몸 전체를 하얗게 칠해 극장 중간 기둥에 거꾸로 선 채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줄의 길이로 제한되는 움직임에는 단말마처럼 배어나오는 신음소리와 함께 절묘하게 미치지 못하는 선분으로 상정함으로써 닿을 수 없는 타자와의 간극을 실감케 하고, 거기에 실은 온 몸을 통한 진정성의 무게를 더했다. 고목나무 같은 하얀색 피부가 벗겨지듯 떨어져 나갔다. 감정의 고양과 극한 분출의 몇 번의 담금질을 통해 죽음에 이르렀고, 다시 처음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몸은 앞선 질서들에 의한 재편된 몸이 아니라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가 강했다. 벌거벗은 채 끊임없이 주변을 뛰어 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관찰자이면서 동질감을 형성하게 된다.


posted by 아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