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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한국실험예술제 온라인 웹진 - 곤충의 더듬이나 동물의 촉수를 닮아 있는 안테나는 보통 송수신의 매개 역할을 하는 기구로 생각됩니다. 안테나에서 탄생한 "안테나다"는 "안테나~다!"라는 친근한 외침이자 '안 태나게' 움직이는 전달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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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30. 22:05 Anth-e-nada(작품 포커스)



 디제리두의 ‘엥’ 울리는 소리는 독특한 발화로 드러난다. 문짝으로 가리어진 데서 연주는 구음과 같은 독특한 층위로, 인간의 목소리로 전용되어 나타난다. 여기에 ‘라무’의 춤은 원시적 주술성을 살리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에 장구가 더해지는데 이 분위기 속에서는 역시 이상하게 변용되어진다. 라무는 자신의 앞으로 덩굴 내지 굴레, 어둠을 상정하고 그것을 헤치고 나가고, 눈을 가려 시각을 무화시키며 청각과 신체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물질적인 어떤 것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외줄타기 광대를 연상시킨다.

 노이즈가 회오리치는 것으로 전환되고, 신비스러운 층위에 사운드가 가득 채워지고 빛은 물결무늬를 만들고 있어 황홀경으로 간다. 장구의 ‘삐’ 채우고 있는 사운드는 귓전 안에서부터 내파하며 몸 안에서 머문다.
 라무는 단지 혼란 속에서 의식을 무화시키는 듯하다가도 움직임을 이어가는데, 단단히 의식을 신체에 담지하고 있다. 이는 인지하기보다 자각하는 것으로, 불현듯 진해지는 어떤 것을 전유하는 것이다. 어두운 빛 그림자 속에 희미한 자취의 신체로 내비치는데, 그 안에 치열한 움직임은 보이기보다 관조되는 것이다. 고조되다 어느덧 무화되는 그 깊이는 점층적으로 채워지며 환원된다.   

 파도소리는 물결치며 공간을 덮는다. 사운드는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고, 이후 디제잉이 잠식한다. 반복적으로 점층적으로 울려 퍼지는 사운드는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몸의 리듬을 따라가며 감각할 것을 요청한다.
 기차 경적 같이 반복되는 사운드는 작아졌다 커졌다 미세한 차이로 조절되고, 이어 멜로디 는 오르간 같은 장중한 소리로 덮이고, 노이즈가 귀신 소리처럼 루프 되며 시작됨은 긴장을 주며 적막을 깨는 소리는 신체로 이전된다. 곧 ‘딩딩’ 두드림을 타고, 긴장의 계단을 형성한다.

 무정형의 공간에서 공기를 찢는 소리는 비장하고, 다시 되돌아가며 공허함을 안긴다. 플라멩코 같은 격렬한 리듬을 타고 진동하기도 하고, 건반은 ‘챙’ 하고 내려뜨려지는 깨짐의 속성을 일깨우듯 파괴되지 않고 루프 된다. 즉, 어떤 사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연속된 긴장으로 실재계에 접속하며 물질로서 도발한다. 파편이 아닌 고무줄 같은 것으로 생명력을 갖고 벗어나지 않는, 파열되나 결코 죽지 않는 몸은 아주 미니멀하고 디테일하게 들어간다. 그것은 신체 에너지를 담지하고 오히려 서정적으로 보일 정도로 가냘프게 춤을 추되 기도하듯 팔을 흐느적대는 것이다.

 날카롭게 가늠 지점을 타고 쟁반의 쨍그랑 소리 ‘emergency’(비상사태)의 경구가 울리고,  실재의 물질 따라붙는 행위의 순간, 건반은 이동하는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빠르게 간다. Kinki Iori는 위로 들쳐 업고 Tochikawa Kyo는 무방비 상태로 몸을 내맡긴다. 사운드가 막  되는 대로 두드리는 듯한 연주로, 거의 무의식적 경로로 분출된다.

 하나의 경지를 이룬 듯한 태엽인형처럼 도는 사운드에서 천천히 튕기고, 잔잔하게 그 뜯음의 행위를 품고, 재잘대듯 끊임없이 멈춰서 움직이며 별빛을 터뜨리듯 펑 하고 터뜨린다. 그냥 천천히 누이고 현을 뜯는 행위로 연주하고, 또 잔잔히 기타를 친다. 굉장히 한국적이며 세월을 담는 내러티브로, 인생의 굴곡을 조용히 뜯는 것에 가깝다. 또한 그 스스로 만든 현판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그는 특정 악기의 형식이 없는 상태를 상정하고 정확한 개념을 부여하지 않는다. 기타의 손(선율) 가는 대로 악보는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된다. 수행 이후 비로소 악보가 만들어진다. 음계는 다르게 그리고 그것의 매질로서 실재에서 나오는 음이 다양하게 자리한다. 곧 물질적인 것은 연주 기법에 따라, 강도에 따라 연출이 안 된 원래의 소리로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글/사진 김민관 mikwa@naver.com

posted by 아트신
2010. 8. 30. 21:35 Anth-e-nada(작품 포커스)



시간의 전유를 통한 사유



 권수임 작가는 커다란 시계가 바닥에 놓이고, 작가는 부질없는 몸짓으로 시간 밖에서 시간 자체를 전유하려 애쓴다. 이를 통해 삶에 각인된 기억을 도출하고, 순간의 찰나에 시간을 바라보지만, 기실 스스로를 바라보게끔 만든다.
 
요정의 재현


 Eshe & nabah의 시간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움직임에 가해지는 신비로운 층위는 지상으로 하강하는 이미지와 결부된다. 단체로 에워싸서 집단적 움직임으로 나아가며 나무와 같이 한 덩어리를 이뤘을 때 음악의 흥겨움이 더해지며 각자 흩어져 다른 움직임들 펼쳐낸다. 교태 어린 몸을 분절시키기도 하고, 어깨춤과 골반의 흔듦은 땅의 진동과 박자를 체현하며 몸의 중심은 단단히 유지한 채 팔을 좌우측으로 꺾고 비틀고 하여 팔로 조타 역할을 하고, 끊임없는 흔들림 가운데 안정감 있게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내 안의 낯선 타자의 전용

 기타 멜로디가 서정적인 선율을 만들고, 그 속에 바람결에 얇은 옷이 나부끼는 전원으로 상정된 장소에 Tochikawa Kyo는 한 소녀를 연상케 한다. 기괴함을 부르는 몸짓의 극단적인 것, 상체를 뒤로 젖히며 입을 벌리고 의식을 몰아의 상태로 몰아간다.
 누워서 몸을 수축하고 비비꼬며 어렸을 적의 음악이 잣는 기억을 더듬어 가되 과연 그녀는 현재 어디쯤 위치하는가?, 정신을 내려놓고 신체 자체에 에너지를 싣는다. 추억을 헤치고 가며 상상계에 내동댕이쳐진 실재계의 몸은 현대 무용의 여리고 가는 선을 다소 투박하게 내지르는 것으로 전용되어 시작된다.
 음악의 신비스러운 층위를 바람결로, 또 일종의 마법처럼 처리하며 의식의 무화와 표정에서 귀신과 악마를 꺼내 보인다. 이는 엄습하는 실체로 다가오는 것으로, 내 안의 낯선 타자를 끄집어내 보이는 것이다.

짧은 시간의 신호등에서의 이벤트 둘


 ‘아트탱고’와 까뽀에이라 팀, ‘무젠자’는 신호등이 켜지면 횡단보도로 나가 ‘신호등 퍼포먼스’ 공연을 펼쳤는데, 그 시간이 정말 짧았다.
 참여자로서는 횡단보도를 평소 관성적으로 건너는 것이 기실 생각 없이 오직 그 거리만큼의 실제 경험을 지우며 빠르게 지나가야 했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일단 예술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 그 장소의 경계가 어디까지 되는지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으로서 ‘신호등 퍼포먼스’는 유효해 보인다.




 아트탱고는 횡단보도 양편에서 그냥 사람들과 함께 똑같이 신호등을 건너다 만나서 탱고를 추었다. 파트너가 따로 정해져 있는 대신에 그룹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자유롭게 손을 잡고 서로의 몸에 휩싸이는 것이다.
 파란불이 줄어들면 경찰관이 질서 조정자로서 다급해지는 모습이다. 판을 벌이다 빨리 접어야 하는, 또 파란불이 되면 빨리 건너며 판을 벌일 생각을 해야 하는 게 짧지만 강렬한 경험으로 화한다.



 까뽀에이라의 움직임은 원초적인 야생의 인간 몸짓과도 닮아 있는 문화적 원형을 짐작케 하고, 무젠자는 끊임없는 회전의 반경을 그리는데, 마치 비보이 댄서와도 비슷한 궤를 그린다. 둘 씩 짝지어 일종의 춤을 추는 가운데 따로 외떨어져 가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호흡을 맞추며 큰 에너지를 형성해야 한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아트탱고 팀보다 더 과감하게 신호등의 빨간불이 켜져도 움직임을 마치고 유유자적 들어오는 모습이다.

사진 & 글 김민관 mikwa@naver.com

posted by 아트신
2010. 8. 30. 20:55 Anthena-da(현장 포착)












posted by 아트신
2010. 8. 30. 20:44 Anthena-da(현장 포착)



거리 퍼레이드, 도로를 점거하다..



흥겹고 열정적인 연주를 보여주는 브라질 타악 그룹,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posted by 아트신
2010. 7. 29. 14:24 2010KEAF REVIEW


Private, 은밀한 경험의 매개



 Kirils Pantelejevs는 환자복을 입고 이불 안에 들어가, 카메라를 프로젝터와 연결해 그 안의 상황을 관객에게 중개한다. 어릴 적 장난치듯 유아기적 증후가 나타나는 옷과 놀이, 반복되는 장난감에서 나오는 목소리, 램프를 켜두는데 어두운 공간이 하나의 톤으로 비치게 되는 배경이 전제로 상정된다. 마이크로 말을 건네다 놓고, 초코바를 먹는다. 장난감 자동차를 만지고 버튼 눌러서 시동도 건다. 담배도 피우는데, 이불이 내려와 얼굴을 덮어 자신의 시야를 방해하거나 소통이 가로막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좁은 공간 안에서 신경 쓰며 고개를 완전히 들지 못하는 상태에서 행동이 이뤄진다. 시선을 사물에 유지하고 다루는 것에서 카메라로 오가는 자신의 사생활을 매개한다. 자신의 성기를 비추면서 "Common baby!",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실재는 영상으로 옮겨지고 카메라와 조응하며 카메라가 매개하는 현실, ‘카메라’의 현실은 다시 누워 있는 미약한 움직임의 불투명한 프레임에 가 있는 실제 그가 있는 공간을 재매개하며 한다. 카메라는 곧 시선을 통한 자아를 형성하는 거울과 같은 기능으로 작가 자신을 매개하고 또한 그에게 관객을 매개하며 의식의 확장 지점을 생성한다. 관객은 작가가 볼 수 없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독점한다. 둘의 만나는 지점, 곧 관객과의 의식이 접점을 이루는, 시선이 만나는 극명화된 순간은 실수로 Pantelejevs가 초코바를 떨어뜨려 마이크를 통해 크게 소음이 울려 퍼진 상황에서 Pantelejevs의 눈빛이 떨리며 당황스런 기색이 흘러가는 부분이었다. 그 순간에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고, 작가에게 카메라는 엄습하는 실체적 존재로서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것임을 찰나적 인식으로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Untitled, 의식의 초월적 기제로서 생명의 육화

 철조망을 꼬아 무한대(∞) 영역의 표시로 만든 오브제를 앞에 두고, 토치 켜두고, 초콜릿과 소주를 각각 한번 베어 물고, 한 모금 마신 뒤 관객에게 돌려 나눈다. Erik Hokanson은 관객을 퍼포먼스의 같은 참여자 내지 공모자로 만드는 것이다. 철조망을 펴고 고리를 만들어 머리에 쓴다. 일종의 예수가 썼던 면류관의 상징을 내포한다. 행위를 위한 과정에서 도출되는, 행위의 전제가 되는, 무대의 조건을 구축하는 오브제가 단순하면서도 투박하게 무대에 부여된다. 토치로 담배를 불을 붙여 들이마시고 철조망에 꽂기 시작한다. 그와 같이 가방 하나에서 나오는 사물들, 가방은 일종의 잠재태로서의 퍼포먼스를 들고 오는 바구니로, 퍼포먼스를 성립시키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면류관을 쓰고 구멍을 뚫은 잔에 초콜릿을 담아 소주를 막 붓는다.


 진흙을 배에 살을 베듯 문대, 붉은 기호를 새겨 신체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신체에 가하는 형벌은 텅 빈 신체를 부각하며 신화적 의미를 되찾아가는 무위의 몸짓에 가깝다. 깔때기 기능을 하는 구멍 뚫린 컵에 초콜릿을 잔뜩 담아 입에 물고 고개를 들어 그 위에 소주를 붓는다. 숨이 막히는 알코올의 수혈은 넘쳐 모든 것을 ‘정화’한다. 신체에 과부하를 거는 숨이 막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지나고 남을 때 흩어진 조각과 파편들의 알싸하고 아릿한 퍼포먼스의 감흥은 알 수 없는 실재의 에너지가 퍼져 나오는 순간이다.

 독자적이지 않은 유기체의 생명, 지구상에서 다른 유기체들과의 먹고 먹힘으로 인한 깊은 연관성의 관계, 우주 안의 지구라는 관점에서 본 태양과의 뗄 수 없는 관계와 태양이 갖는 우주에서의 상대적 지위는 원래 작가가 의도하고자 한 심층부에 깔린 이념이다. 이는 먹음의 대상이 되는 것의 타자성을 상정하며 휴머니즘의 이념을 가볍게 벗어나며 우주의 한 불안정한 존재로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데, 오히려 일상의 유아론적 사고의 파괴를 부르는 건 신체의 영역을 파괴하며 전가되는 제의적 성찰에 가깝다. 무위의 몸짓으로 퍼포먼스는 신체를 뛰어넘어 의식의 확장을 구현코자 하는 것이다.

Smiles, 웃음으로서의 유토피아 사회의 회복


 테이블 판을 정면으로 향해 놓고, Moe Satt는 마이클 잭슨의 ‘Smile’을 틀고 테이블에 웃음의 표시를 그린다. 감상을 신비스러운 층위에 놓고, 감각이 전해지도록 막 문대는 식으로 립스틱으로 거울에 또 페인팅 한다. 테이블을 펴고 그 위에 올라 무릎 꿇고, 자신의 배에 그린다. 거울을 보며 웃음의 지표, ‘스마일’의 육화는 웃음이란 기호를 지표에서 노래가 얘기하는 행복의 이상향적 그림과 맞물려서 그 본래적 의미의 행복을 되살리는, 역시 무위의 몸짓에 가깝다. 제의적 측면에서의 기호 나눔의 행위는 공동체적 예술의 원초성에 가닿아 있다. 이러한 행위는 물질문명과 현대의 속도전에서 탈주하는 유일한 하나의 경로일 수도 있다. 소통이란 측면은 일방향적인 출발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공모가 의식의 외재화가 집단의식의 내재화로 향해 가는 한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관객에게 다가가 자리를 계속 옮겨 다니면서 작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공을 나눠주고 여기에 각자 스마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 뒤 다시 거울 앞 무대로 돌아갔을 때 자신의 얼굴에 그 코를 붙이게 해서 온통 스마일의 기호가 스스로의 얼굴을 형성하는 공이 얼굴에 덮여 마치 피에로와 같은 독특한 얼굴을 갖고, 하나의 웃음의 표상으로서, 삶의 밝은 층위의 모습을 띄우는 전령사로서. 그는 계속 극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노래는 계속 들어도 그것은 반복보다는 또 다른 신화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전한다. 계속 자세를 취하며 노래를 전유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체화한다. 웃음은 그의 몸에 묻어 있고 웃음은 실체로 우리를 마주한다. 그러한 웃음의 가치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잊어버린 것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란 미약한 메시지는 희망을 걸고 동시에 일어서는 것에 가깝다.

Camouflage(위장), 자연에의 제의적 접속


 RONALDO RUIZ는 자연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배경으로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는 등의 자세를 취한다. 자연의 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하되 자연의 일부분이자 환경의 한 구성원이라는 자각 하에 고유한 예술가의 정체성을 의식의 확장된 공간에 두며 정초하는 것이다. 기꺼이 공간 안의 오브제가 되고, 신체를 하나의 점이나 덩어리로 만드는 행위의 계열선상에서 볼 때 만능의 가방에서 수행의 오브제를 꺼내 새장 앞에 서서 얼굴을 반쯤 가림은 말 그대로 신체를 변용하고 분해하는 것이다. 이어 휴대폰에 테이프를 감아 새장 안에 매단다. 깃발을 흔들고, 곡괭이로 흙이 흩어져 곳에 놓여 있는 나뭇가지 묶음을 내려친다. 나무는 자연과의 친연성을 갖고 자연을 환유한다. 곡괭이와 나뭇가지를 세우고 깃발을 그 위에 묶어세운다. 가방에는 톱밥이 들어 있다.


 이마에 은색 거울을 붙이고 나서 건전지 같은 게 줄로 삐져나온 충전지 같은 것을 한 눈에 테이프로 감고, 맹꽁이 소리 같은 울음과 함께 빛이 번쩍이는 작은 기구를 입에 물고 테이프로 붙여 돌아다닌다. 관객들에게 직접 다가가 은색 거울을 이마에 붙여준다. 마치 제 3의 눈으로 자연과의 일체화 내지는 접속을 종용하고 있는 듯하다. 자연과 현대 문명의 접합의 인위적인 의미망은 자연에의 순환적 인과관계의 연금술적인 의미의 도출 속에서 물질문명의 위태로운 위치를 내려놓고 자연으로 화할 수 있다고 보인다. 자연의 되살림은 생명에의 갈망에서 출현하며 원초적인 제의성으로 현실을 매개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는 흙을 손으로 쓸어 모으고 물총을 난사한다. 흙에서 흙으로 물에서 물로 돌아가는 원리는 자연의 의미망을 자연스레 체현하는 것에 가깝다. 그의 작업에 있어 그 지연의 원초성이란 다시 자연에의 동화 의식과 의식의 확장성에서부터 출현하는 것일 것이다.

 나무를 부셔 다시 가방에 담고, 모든 것은 자연으로 화하며 하나의 알레고리 속으로 흡착된다. 마치 마법의 가방은 자연을 신화적인 무엇으로 꺼내고 펼치는 창구로서의 의미를 담지하고 있다. 나무를 자신의 신체에 감는다. 가방을 덮고 빨간 테이프로 묶는다. 불편한 신체로 몸을 끌고 곡괭이로 가방을 부개며 끝을 낸다. 물질에서 자연으로, 신체로써 그 둘을 매개하며 자연에 접속하는 물질의 불안정한 혼융적 층위에서, 그것을 깨며 다시 자연의 넓은 층위로 나아간다. 작가의 행위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죽음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쓰레기란 개념이 인간에게서부터 유래하는 것임을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The Nature of a red dot, 예술의 경계를 시험하는 렉처 퍼포먼스


 Dovrat ana Meron는 관객들에게 질문으로 사유를 촉발한다. 빨간 점에서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빨간 점과 연관 지은 것들이 얼마인지 묻는 경매의 방식에서, 신용카드로 지불한다는 적극적인 관객의 입장도 나타난다. 점에서, 점이 뚫려 결함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옷, 점이 뚫린 것이 장식이 되어 하나의 온전한 옷이 되는 옷, 옷을 입고 있는 그녀를 떼지 않고서의 옷 등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따라서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니는지를 물어 그 가치에 표면적으로는 동조하게 하면서도 예술에 가격이 매겨지며 예술가의 의식이 상품으로 분해되는 예술이 자리하는 방식에서 예술과 예술에 대한 인식을 성찰케 한다. 또한 사진과 DVD 등으로 예술의 부산물로서 복제되는 예술의 유통 과정을 제시하고, 그것이 갖는 원본과의 상관성을 묻는다.

 작품명이 붙은 작품을 상정시키는 명찰들이 붙어 있는 판에서, 작품이 팔릴 때 붙이는 것이지만 오리지널을 확인시키는 붉은색 점 스티커, 곧 그 점이 얼마냐를 묻고, 작품명 부분에 바늘로 엄지손가락을 찍어 작품이 열린 미술관의 이름을 말하며 빨간 피가 배어 나오게 한 뒤 찍는다. 자연스레 ‘이것의 작품은 얼마인가?’를 묻는 것에 연관되어서 작가의 행위는 미술관의 이름을 지정해 그곳에서 전시가 열렸다는 명제와 뒤따르는 유효한 작가의 날인으로서 피로 작품과 작품의 판매까지를 성립시키는, 수행발화적인 언어로써 역사를 현재로 만들며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의 언어는 작품에 대한 지표이자 공간의 의미를 작품과 결부시키고 작품을 물질의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동시에 그것이 묻은 작가의 정신적 증거를 우위에 세운다.

 곧 예술작품 이전에 예술가의 우위를 두는 것이면서 동시에 작품이 작가를 포함한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인식을 전략적으로 보여주며 이러한 행위의 결과가 다시 상품화되는 연쇄과정 하에 예술을 수여한다. 예술가의 고유한 정체성의 독립적인 가치는 작품으로 분배되며 이는 상품으로 쉽게 치환된다. 여기서 그녀는 예술가가 시작하는 지점에서부터 예술이 존재함을 역설하지만, 그것 역시 실체화되고 매체에 매개됨으로써 낳는 또 하나의 기록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으로, 예술가의 인식을 벗어남을 보여준다. 수행의 현재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붙잡는 무용한 기록들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이 묻어 있다. 다만 그 현재성은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우리의 의식의 자장을 파고든다. 예술적 물음으로서.

글/사진 김민관 mikwa@naver.com

posted by 아트신
2010. 7. 27. 11:20 2010KEAF REVIEW


(클릭 => 사진 확대)


 2010한국실험예술제가 24일 개막 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들을 선두로 국내/해외 아티스트 및 각종 동아리나 협회의 그룹의 참여와 포클레인, 아트카, 보트 등의 장비가 동원으로 홍대 앞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오는 대규모 퍼레이드를 펼쳤다. KT&G 상상마당이 위치한 주차장 거리에서 대규모의 참가자들이 군집, 서교로를 건너 와우산길로 돌아 나와 도로 한 쪽을 한참동안 점령하며 왔다. 패션과 카페의 거리, 다복길을 지나, 걷고 싶은 거리에서 다시 서교로를 지나 주차장 거리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펼쳤다. 다양한 개성 있는 집단과 브라질의 문화를 전하는, 에스꼴라 알레그리아의 연주와 까뽀에이라를 펼치는 무젠자 공연이 어우러진 퍼레이드는 지나가던 행인, 동네 상가의 주인 분들 등 홍대 전역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었다.

▲ 부토 아티스트, 일본의 후지에다 무시마루

▲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동호회가 선두로 퍼레이드를 이끌었다. 도로를 지나는 데 일종의 경호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 줌

▲ 포클레인과 프랑스 퍼포먼스 아티스트, 에드위지

▲ 사전에 일반인을 모집해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는 퍼포먼스 그룹 회로도의 유지환 씨(얼굴을 하얗게 분칠)를 필두로 한 단체 퍼포먼스 행렬


▲ 장구만으로 이뤄진 '소나기 프로젝트'가 오토바이 행렬 다음으로 위치해 퍼레이드의 활기를 불어넣음




▲ 에스토니아 퍼포먼스 그룹, 루벤스

▲ 브라질 까뽀에이라 팀, 무젠자, 중간 중간 퍼레이드에서 까뽀에이라를 선보임

▲ 한국동물보호협회

▲ 잠시 멈춰서 퍼레이드를 보는 사람들



▲ 흥겹고 열정적인 연주를 보여주는 브라질 타악 그룹,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 길 중간 중간 벽에 자신의 포스터 형태의 작품을 부착, 전시하는 프랑스 아티스트, SP38








▲ 임근우 예술동아리, 임근우 작가의 '고고학적 기상도'를 입체 조각으로 탄생되어 퍼레이드에 참여

▲ 매직 아티스트의 해맑은 미소



▲ 벨리댄스 팀, Eshe & Navah

▲ 이스라엘에서 온 작가 Dovrat ana Meron(오른쪽), 왼쪽은 프랑스 작가 에드위지

posted by 아트신
2010. 7. 26. 15:48 2010KEAF REVIEW


맴돌며 엄습하는 사운드와 신체 조각과의 대위법적 과정

VIVARIUM by Non Grata


 빽빽이 의자를 놓고, 관객들이 정면을 향해 앉자 그 앞에 거울을 쭉 갖다 붙인다. 거울을 하나 놓을 때마다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 거울에 출현하며 끊긴 사람의 얼굴이 이어지고, 관객 모두가 하나의 세계에 예속되며 그 안에서 연결된다. 자기에로 소환시키되 그 자신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투명한 거울은 보통 우리 자신을 지켜보되 세계를 보여주지 않는 불투명한 세계에 대한 창구로 기능한다.

 섹스의 사운드가 처음부터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길이로 지속되는 가운데 섹스의 하중은 거울을 보는 우리 자신을 향한다. 거울 안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을 감지하기 위해 자신에의 경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게 된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되 우리 자신에게로 완전히 집중하거나 침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내면으로 전이되는 사운드가 주는 자극에서 벗어날 수도 없지만, 섹스의 상황을 겪는 데 대한 자신의 반응을 시선의 마주침을 통해 완전히 전유할 수 없는 불편함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은 시선으로 연결되지만 타인의 시선과 자기에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불편한 자신을 인지하고 있거나 웃음으로 상황을 감내하기도 한다. 자아를 마주하고 상정하며 주체를 획정 짓는 거울에 점착하여 자신에게서 완전히 시선을 거두며 자신을 대상으로 버려둘 수 없다. 거울은 틈입 불가능하며 이 상황은 해체 불가능하며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거울은 얼굴 없는, 목소리만 존재하는 극장의 관객을 정면으로 출현시켜 시각적 매체로 삼고, 그 목소리를 지운다.

 씨어터제로 극장의 레일이 돌아가며 돼지 가면을 쓰고, 성기께 단 오브제로 그 성기를 확장해 놓은 기괴한 괴물 신체는 레일의 줄에 연결되어 돌아가며 수박을 가져와 수박에 자위행위를 한다. 깃털이 달려 제멋대로 움직이며 소리 나는 장난감, 끊임없이 반복되는 한 문장을 담는 확성기, 불붙인 오징어 등이 돌아가며 독자적으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는 몇 개의 조합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반복과 중독은 일종의 실재계에 도달하는 길로 여겨진다. 의식의 무화에서 불현 듯 뇌리를 스쳐 간다. 거울에 적는 Al의 ‘erection’(발기) 등의 단어, 곧 동물적 감각은 인간의 잠재된 욕구로 치환되며 동물과의 공통점을 상기시킨다. 물론 인간은 욕구를 욕망으로 치환시키는 데 반해 욕구 그 자체는 변형 이전에 명확하게 신체에서부터 출현한다. 일종의 렉쳐 퍼포먼스로서, 목소리와 사운드는 계속적으로 맴돌이를 하며 여기에 풀무질을 한다. 어두워지며 소리는 남고, 돌아가는 것들의 자취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거울을 거꾸로 돌리며 애초에 상정된 상징적 매트릭스는 다시 세계로의 시선을 불안정하게 흐트러뜨리며 마무리되고 있었다.

Human + Life by 류환


 메트로놈을 작동시켜 놓고, 현대인으로서 류환은 신문을 보며 가벼이 현실로 돌아간다. 퍼포먼스 현장이 아니라 현실로 들어가는 기호로서 메트로놈은 현대 사회의 속도와 급박한 리듬을 상정한다. 신문을 찢고, 담배를 피우고 담배 연기를 내뱉지 않고 들이마시고, 숨을 억제하고 고통을 겪으면서 풍선을 분다. 풍선 불어놓은 것들을 위로 띄우고 담배로 터뜨린다.
 메트로놈은 그 구속됨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그것은 이미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이미지와 병치되는 순간에는 거꾸로 채워지며 틈입하기도 한다. 행동의 층위적 전환이 있을 때마다 작가는 메트로놈을 끄고 다시 켜서 더 빠르게 작동하도록 한다. 메트로놈은 빠르게 작동하며 일정한 리듬 단위를 구체화며 그 구조를 인지케 한다. 붉은색 조명에 작가는 웃통을 까서 자신의 상반신에 수십 차례 침을 놓고 위에 부항을 뜨며 얼굴 역시 빨간 물감으로 칠한다.

 반복되는 부항의 지루한 시간은 의식을 비우게 하고,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여덟 개 이상을 뜨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관객은 몸으로 직접 체현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신체의 확장으로서 피부는 압력을 바깥으로 분출하기 전 순간에 머물러 있다. 부항을 떼자 피가 솟구치는 대신 몇 방울이 점점이 배어 나온다. 얼굴에 빨갛게 바르며 부항을 떼어 낸다.


 'human Life Natural Civilization'을 차례로 쓰며 환경오염의 위험을 경고한다. 시각적 기호를 충족시키는 장치로서 몸을 오브제화 또 영토화하며 출발한 작가의 행위는 일종의 상징화 전략으로 명확화되지만, 그것은 본래적 의미에서 잃어버린 실재로서 의미, 따라서 기호가 아닌 것이다. 붉은색은 피라고 하는 것으로 제시되지만, 이는 피로 얼룩진 땅이라는 실재와 붉은색이라는 전위적이고 혁명적인 기호의 이념 사이에서 획정되지 않고 몸부림의 유희로써 사라지는데, 사실상 환경오염의 폐해를 이미지적으로 전용하여 그 바깥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는 인류를 상정한다. 그 안의 세계는 파열을 필요로 하고, ‘mis for time of erotn’이라 쓰고, 풍선을 크게 불며 ‘civilization’을 쓰고 터뜨린다.

AMERICAN WOMAN #12 BY Erik Hokanson & JILL MCDERMID


 Hokanson과 MCDERMID은 옷을 후다닥 벗고 누드 상태에서 여성 옷을 입고 가발을 쓴다. 반짝이는 남자(Hokanson)의 검은 옷은 에나멜 같은 페티시즘적 욕망과 연결되며 여성(MCDERMID)의 붉은색 원피스는 연약함의 기호를 부가한다. 검은색 테이프를 팔에 붙이고, 공연 전 미리 설치해 놓은 경계로서 끈이 둘러쳐진 무대 가에 붙어 앉은 관객들을 두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Hokanson은 정신없이 환경을 구축해 가는데, ‘caution’이라 써진 테이프를 관객의 목 뒤에 두르거나 해서 무대를 덮어 팽팽하게 집단을 엮는다.

 이 긴박한 리듬에 동조할 수는 없어도 따라가게는 되어 있다. Hokanson은 가슴의 하트를 도려낸 나머지 종이를 붙이고, 사람들 몇 명을 끌어와서 경계를 둠으로써 집단적 포박 형태를 취한다. MCDERMID는 자신의 심장을 만지며 심장이 있느냐 물어보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며 전단지를 가지고 심장을 만들어 자신의 가슴께 넣는다.

 호루라기는 중독적인 파열음으로 마찰을 통한 고통을 부여한다. 스스로 경계로서 의미를 띠고 발화하며 숨 언어를 치환하는 호루라기 부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탄가스를 연결한 토치는 연소되며 사운드를 생성한다. 호루라기 소리와의 병치는 일종의 대위법을 형성한다.   철조망으로 둘러싼 미국 국기는 엄연한 장벽 안에 존재한다. 심장은 별과 알레고리 관계를 형성하는가!


 심장을 도려내고 보여주고 자신 가슴 속에 넣고 그 심장은 나에게로 일종의 접수 됐다는 MCDERMID의 표식에 비워진 심장이 있었음을 알리는 종이를 붙인 사람들은 관계망을 형성한다. MCDERMID는 자신의 분홍색 가발의 머리를 잘라서 앞서 팔에 붙여놓은 검정 테이프를 떼서 옷을 뒤로 걷고 엉덩이 위쪽께 머리털을 붙이고 한 명씩 바라보면서 ‘기호(신체) 나눔’을 수행한다. 가슴들을 둘러놓고 가슴의 형체들은 하나씩 떼서 태운다.

 가슴 속에서 MCDERMID는 죽음의 수면을 맞는다. ‘너의 심장 곁에 나 잠들다’, 타자에게로 가는 체화의 몸짓은 불가능성을 안고 교묘한 트릭에 그치는가, 아님 가상의 유희적 수행일까, 옷을 다시 벗고 검은색 물감을 서로 몸에 페인팅해 준다. 몸을 뒤섞는 접촉 행위가 관계를 물결치는 신체로, 무한한 영토로 변용하며 관계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이어 북한 국기와 태극기를 성조기 위에 놓고 불태운다. 불을 태우는 행위는 혁명의 들끓는 피의 에너지가 아니라 관계와 의식을 완전히 뒤섞는 연금술적인 의미에서 차용된 바가 커 보인다. 관계의 누층에 접속하는 데 불가능한 문화적인 경험과 전유의 시간을 획득할 수 없는 만큼 의식의 무화적인 경계 허물기와 트랜스한 순간의 점프가 필요했다고 판단했던 것이 아닐까.

Wir haben zeit.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by Rubens


 바다에 들어가 하반신을 담그고 퍼포머가 호른을 부는 영상으로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호른의 한 음계를 부는 데서 시작된 연주는 이어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를 부는 행위로 계속 반복된다. 바다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한 퍼포먼스는 행위를 도시에서 해방시키고, 자연으로 에너지를 확장하며 의식을 확장시킨다.

 여기에 소주병을 많이 들고 나오는데,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시체로서 놓인 큰 몸피를 지닌 퍼포머가 시체로서 잠들고, 소주병들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행위로 소주잔을 깨서 신체 위에 덮는다. 신문 같은 것들로 함께 덮여 있는 신체는 숨을 쉬며 꿈틀거리고 깨진 유리들이 떨어져 내린다. 입으로 소리 내는데, 어린아이의 괴성 같이 들린다. 어린 시절의 마징가제트류의 만화영화 주제곡 같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마치 유리잔으로 샤워하는 퍼포머는 실재계를 거치는 감각의 마찰을 야기하는데, 아픔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그 속에 있으면서 소주병들을 잡고 분다. 그것들이 찌르거나 하는 게 아니라 피부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기에 마찰과 접촉에 가깝고, 피를 많이 야기하지는 않는다. 관객석을 뚫고 화장실로 향하는, 이상한 신음과 병 몇 개를 동시에 입에 대고 부는 행위를 하며 지나치는 그녀의 신체에 구정물이 묻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퍼포먼스 행위는 영상의 행위와 등가 되어 그것이 의식적으로 전이된다. 계속된 연주는 누군가를 그립게 만든다. 살갗에 닿는 음성과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이 의식을 파고든다. 고향과 추억, 그리움은 마치 신체에 묻어있던 흔적과 같은 것으로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신체를 채 가늠하기 전의 어린 시절, 떼를 쓰지만 그것이 전해지지 않는 순간, 유희적으로 내뱉는 소리에 자신의 의식을 맡겨버리던 기억 속에 묻어 있던 순간들이 그녀 몸을 타고 흐른다. 그 자각하지 못하거나 초자아적 타자의 개입 없이 유예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심층의 자아로 접속하는 여지들을 심어 주었다.

Photo by J & Yokko
글 김민관 mikwa@naver.com

 

posted by 아트신
2010. 7. 25. 16:19 2010KEAF REVIEW


 

▲ Non Grata의 Al의 축사

▲ 얼음을 부개고 사과를 베어 물다...

▲ 홍대 앞 마지막까지 개막 공연을 함께 한 많은 관객들

▲ 대미를 장식한, 살수차가 물을 내뿜는 모습

 홍대 상상마당 앞 커다란 설치 무대를 3시간 여 크게 장식한 2010한국실험예술제의 개막 축하공연은 소위 ‘스펙터클의 미학’을 유감없이 펼쳐내며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행인을 붙잡았고, 지난 한국실험예술제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호응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200석 가량의 줄지어진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 하나의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가 융합되고 만나며 여러 매체가 조응해 ‘변화하는 볼거리’로 식상함을 거둬냈기 때문이다. 몇몇 작품들이 그 성격상 준비 시간이 많이 듦에도 중간의 공백 시간들에 진행자인 김대범은 익숙하게 대중들의 마음을 붙들어뒀다. 내빈들의 소개를 생략하고 시작했다는 말처럼 여느 축제처럼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부분을 과감히 버리고, 행사 후반부에 Non Grata의 퍼포먼스 아래 자연스레 지난 축제의 콘셉트를 퍼포머들이 쓴 상자에 적는 식으로 축제의 역사를 나타내고, MC과 축제의 예술감독 김백기 KoPAS 대표와의 짧은 인터뷰를 통해 축제가 의도한 바를 듣는 시간으로 자연스레 프로그램 안에 삽입되었다. 이를테면 2007년 한국실험예술제를 치르며 홍대가 서울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문화예술도시의 대표적인 장소로 충분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마임이스트 ‘김찬수’의 마임을 기반으로 한 쇼가 사람들의 관심을 자연스레 끌며 개막식의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저글링 및 블록들을 두 손으로 하나씩 겹치며 허공에서 쌓는 묘기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끌어냈고, 연인 한 쌍을 무대로 끌어내 풍선아트를 선보이며 풍선으로 웃음과 두 연인의 사랑을 이어줬다.


 KATA는 신디사이저에, 인간 드럼과 건반 등으로 관객의 박수와 조응하며 웅혼한 울림, 또 장난감 같은 귀를 자극하는 묘한 사운드를 분출했다. 




 퓨전국악 그룹 ‘황진이’는 바이올린 등 현악기 위주로 멜로디를 이끌어 가는데, 정서를 저울질하는 셈이다. 무릎에 가벼이 몸을 실어 왔다 갔다 살랑거리는 반동과 함께 서정적 음악과 ‘Dancing Queen' 등 익숙한 곡들로 흥겨움을 돋웠다. ‘아트탱고’의 합동 공연이 즉석에서 이뤄지자 객석에서 내려와 연주를 했다.

 장구만으로 이뤄진 밴드, ‘소나기 프로젝트’는 장구가 소리로 보면 비를 의미한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장단과 리듬의 묘를 잘 살리고, 끊고 맺는 호흡에서 혼연일체 되어 눈빛을 주고받으며 다시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연주하며 몸을 반쯤 띄우고 조용히 끓어오르는 소리에 객석의 열기 역시 서서히 달궈지면서 곧 박수로 터져 나왔다.


 장구의 리듬에 맞춰 벨리댄서 ‘에쉬’의 무대 등장에 이어 그의 팀들도 합류한다. 춤이 리듬을 찾는 것과 함께 움직임의 시작에 리듬 역시 맞춰져야 한다. 서로 조응하되 벨리댄스는 그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장구의 리듬을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재미난 퀴즈들로, MC 김대범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며 행사를 잘 진행하며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농후하게 축적된 행사 경험과 개그 소재를 바탕으로 홍대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신 분을 찾거나, 본인의 마지막 키스 경험이 언제인지 등을 묻는 퀴즈를 냈다. 동시에 영어통역을 맡은 또 한 명의 사회자, 도선해 씨는 권투 등의 해외 경기에 선수를 소개하는 굵직한 에너지의 성우를 연상시키는 적극성으로 무대를 채웠다. 중간 중간에



 다음은 거의 하이라이트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 ‘경계없는예술센터’의 고공 벽타기 쇼가 이어졌는데, ‘불가사리’ 연주가 배경음으로, 거미줄과 거미가 레이저로 벽에 투사되고, 스파이더맨이 되서 벽을 유영하듯 기어가고, 상체를 뒤로 해서 눕고, 벽과 직각으로 서서 버티며 허리를 뒤로 젖히고, 발을 떼고 움직이며 허공에서 체공하는 순간, 일종의 무중력 같은 상태가 이어져, 공기의 부피를 실제 맞닿는 아찔함과 짜릿함을 일으켰다. 레이져 거미줄이 몸에서 뻗어나가 몸을 덮고, 레이져 영상이 조금 밑으로 내려오자 국면이 전환되어, 한 바퀴, 두 바퀴 허공에서 도는 묘기가 이어졌다. 측면으로 서있는 상태에서 다리는 원래대로 돌아오는 안정됨이 지배했다.



 벽을 배경으로 하다 크레인의 팔이 길게 올라가 거기서부터 붉은 지주에 두 줄이 늘어뜨려진 가운데 허공으로 두 여자가 거기 매달려 얼굴을 땅으로 향했다. 자세를 바꾸고 그냥 멈춰 있는 것도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서커스의 느릿한 묘기도 그만큼의 긴장을 태우는 건 크레인이 길게 늘어뜨려져 몸과 아슬아슬한 긴장을 이루기 때문이었다.


 에스토니아 Non Grata 팀은 Taje가 비키니에 금가루를 온 몸에 바르고 불길이 이는 철판에 석유를 뿌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동작을 반복해서 깊은 인상을 주는데, 그 묘묘한 리듬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에 다른 두 여성 퍼포머들이 흰 옷에 흰색 스프레이를 뿌려 옷에 묻혀 무늬를 만들었다.


 ‘훌’은 굉장히 에너지 있는 연주 퍼포먼스 밴드로, 태평소를 불어제치며 역동적으로 국면을 전환시키고의 북의 연주가 무대 에너지 층위를 단단하게 다잡고, 기타와 건반이 풍성하게 변주를 일으키며 쉴 새 없이 관객을 황홀경으로 몰아갔다. 마지막 곡에서 에쉬 나와서 춤을 추며 에너지를 강하게 업고 갔다.


 상상마당에 투사되는 레이저쇼의 단독 무대가 짧게 이어지고, 구성진 목소리의 강원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리더를 주축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는 거친 에너지를 분출하는 ‘고구려밴드’의 연주와 노래를 배경으로, 의자를 치우고 객석이 됐던 공간에 흰 광목천을 깔고 사람들이 가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바디페인팅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후지에다 무시마루’와 그의 딸이 자연의 무위한 몸짓과 표정으로, 굼뜬 느슨함으로 무대를 누비며 참여했고, 또 한 명의 퍼포머가 된 ‘배달래’ 작가는 자신의 몸에 페인팅의 진한 흔적들을 채우며 과감한 페인팅으로 퍼포머들의 몸을 누볐다. 고구려밴드는 라이브 페인팅의 열기가 조금 가시자 시사성 있는 노래로 읊조리는 듯한 가사로 관객에 다가갔다.



 마지막에 대형 살수차가 동원 퍼로퍼들의 몸에 묻은 물감을 지워내고 사람들에게도 뿌려져 더위를 한껏 가시게 하는 시원한 광경을 자아냈다.


글 김민관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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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24. 14:19 2010한국실험예술제 INFO

‘예술도시 생성 프로젝트2-Docking’, 예술에의 다양한 접속을 위한 루트들 


2010한국실험예술제(한국실험예술정신KoPAS 주관)가 오늘부터 8월 1일까지 9일간 홍대 앞 씨어터제로(메인 무대-7시-9:30)를 중심으로 홍대 카페, 클럽, 거리 일대에서 펼쳐진다. 

제9회를 맞는 이번 예술제는 퍼포먼스 아트의 시간을 매개하는 신체의 수행을 기반으로 한 과정 미학과 관객의 참여와 나눔을 지향하는 비물질적인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축제가 지향하는 ‘예술도시 생성프로젝트’는 홍대를 예술도시로 격상시키는 3개년의 한 과정으로 홍대가 가진 문화적 장소성과 예술의 실험성을 융합해 홍대를 문화예술적 아이콘으로 재탄생시키는 ‘컬쳐노믹스’ 전략과 연계된다.

 한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중국, 에스토니아, 프랑스, 이스라엘, 일본, 라트비아, 필리핀, 스웨덴, 미얀마, 영국, 미국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원초적 생명력과 문화적 누층을 드러내는 씨어터 퍼포먼스와, 길거리나 클럽 등 각기 다른 장소성을 기반으로 퍼포먼스가 이뤄진다.  



예술제 기간 동안 홍대 일대 카페에서 진행하는 ‘예술도시 입주 작가전(The Invited Show of Art City)'은 삶 속의 예술을 지향하는 콘셉트로 본 전시 참여 작가들이 예술도시 입주민이 되어서 각자 맡은 카페를 갤러리화한다.  

한국실험예술정신(김백기 대표)은 작가와 관객의 소통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이번 극장공연을 하드코어, 아트, 부토, 이메신저, 미디어, 팝퓰러로 세분화하여 매체별로, 작품의 성격에 따라 특성을 나눠 향유층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세밀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코자 한다고 밝혔다. 

서교예술센터에서 벌어지는 아카이브 전시는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의 작품기록을 다양하게 전시해서 모두에게 제한 없이 공개함으로써 학술적인 자료의 성격 및 교육의 가치를 부여한다. 

작품 면면을 대략 살펴보면 한국실험예술정신이 지향하는 신체언어를 기반으로 한 행위예술 및 다양한 장르들과의 교류와 실험, 공공미술적 성격의 커뮤니티 아트, 매체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실험이 장르와 매체를 포괄하는 총체예술적 형태로 나타나며 예술제가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심도 있는 학술세미나 및 아카이브 구축으로 학술적인 영역에서의 리서치와 실험적 성취를 위한 과정을 이어간다.

예술의 실험이 문화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연계되는 예술제의 성격이 예술가의 가난하고 외로운 사투가 아닌 대중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문화를 파생하고 함께 담론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행사 정보 : 한국실험예술제 사무국 www.kopas2000.co.kr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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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5. 10:23 Anthena-da(현장 포착)

 2009 한국실험예술제가 5일 간의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끝이 났다.
 
 마지막 밤, 새벽까지 이어진 광란의 엔딩 파티가 펼쳐졌고, 아티스트와 관객이 뒤섞여 타악의 리듬에 맞춰 방방 뛰며 몸을 흔들어 댔다.

정신없었던 5일간의 꽉 찬 스케줄에 스태프와 슈퍼맨의 수고와 도움이 참 컸던 게 사실이다. 이후 축제에 관한 정리를 토대로 다음 축제에는 내실 있는 축제로 나아가는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음 예술제를 기약하며.

이것으로 실험예술 웹진 안테나다의 운영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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